
by 영대생 2022. 1. 23. 20:36
1. <혼자 사는 사람들> ‘혼자’라는 부사어와 ‘들’이라는 접미사의 공존. 이 제목이 가리키는 것은 개인인가 공동체인가? 혼자 사는 사람’과 ‘혼자 사는 사람들’의 차이점. 고립과 독립의 차이. 무엇이 둘 사이의 차이를 만드는가? 타자를 환대할 수 있는가의 차이. 타자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가의 문제. ‘혼자 사는 사람’ 일 때의 진아는 자기 자신을 관계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힘이 없었기에 자신을 스스로 고립시켰다는 의미이다.
2. 진아의 세계는 불안정하지만 그 자체로의 질서와 리듬을 가지고 있다. 진아의 세계에서 타자의 빈자리는 스마트폰과 TV가 대신 자리한다. 호혜적 관계에 대한 일방적 관계의 대체. 타자에 대한 자아의 방어수단. 왜 진아만이 유령을 마주하는가? 왜 다른 인물들은 그 자리에 있는 남자의 유령을 발견하지 못하는가? 우리는 영화에서 유령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순간이 진아가 처음 휴대폰에서 눈을 떼고 타자와 소통하는 순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첫 장면에서부터 진아는 항상 휴대폰과 함께한다. 타자의 자리를 대체하는 매체. 그런 진아를 처음 소통하도록 만드는 타자가 유령이다. 남자의 유령은 진아에게 서운하다는 듯이 말한다. “인사 정도는 해주지”. 인사라는 애도. 인사라는 환대. 환대받기 위해 돌아온 유령. 이 환대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유령과 같은 자리에 있는 진아뿐이다. 그때부터 진아의 세계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식사를 하던 진아의 방에 잠깐의 흔들림을 일으킨다. 일상의 균열. 흔들리는 질서. 이때 진아의 세계에 균열을 가하는 또 다른 힘이 있다. 어머니의 이름으로 가장한 아버지의 전화이다. <혼자 사는 사람들>에서 기성세대는 관계를 도구화해서 맺는다. 법으로서 가족을 도구화하는 진아의 아버지. 세입자인 남자의 죽음을 오로지 집값의 문제로만 바라보는 집주인. 상담원에게 폭언을 쏟아내는 무개념 고객 등. 물론 이러한 세대론적인 접근이 지나치게 도식적이면서 이분법적으로 영화에서 묘사되는 것은 위험해 보이는 것 또한 사실이다.
3. 진아와 수진의 차이는 거기에 있다. 진아와 고객의 관계는 오직 상담원과 고객의 관계일 뿐이다. 하지만 수진은 가면을 통한 관계를 거부한다. 첫 출근 하자마자 셀카를 찍는 모습에서 잘 나타나듯이 수진은 상담원이라는 직업을 새로운 자아가 아닌 수진 본연의 자아를 통해 접근하는 인물이다. 그렇기에 수진과 고객의 관계 역시 단순히 상담원과 고객의 관계만이 아닌 수진과 타자 간의 직접적인 관계가 될 수 있다. 뒤집어 얘기하면 수진은 고객과의 만남에서 상처를 입을 가능성까지 열어두었다는 의미이다. 진아는 cctv의 시선을 통해 어머니와의 물리적 거리를 메우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자신이 어머니의 곁에 없다는 죄책감에 대해서 스스로 면죄부를 줄 수 있다. 내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 그러니 곁에 있다는 것. 이때 cctv의 시선은 곧 매체의 시선이다. cctv 화면은 진아의 스마트폰과 TV 화면을 통해서만 나올 수 있다. TV와 스마트폰에서 일방적으로 전송되는 화면을 보는 것과 달리 cctv 속 화면은 진아가 주인이 되어 바라볼 수 있다. 이 차이는 곧 대상에 대해서 무엇을 소비하는가의 문제로 직결된다. 스마트폰과 TV 화면을 볼 때 진아는 대상의 기호를 소비하는 것이다.
4. 성훈의 특이한 점은 다리를 다친 채 이사를 왔다는 점이다. 혼자서는 이사를 할 수 없다. 그렇기에 필연적으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그 집에 정착할 수 있다. 뒤집어 말하자면 성훈은 진아와 달리 홀로 있지 않은 인물이다. 혼자 살지만 홀로 있지 않는 것. 성훈은 이미 혼자 사는 사람들의 세계에 속해 있다. 일을 하던 수진은 진아에게 이상한 말을 한다. 그녀의 귓가에 콜을 받을 때 울리는 연결음이 지속적으로 들린다고 한다. 이건 무슨 신호인가? 가면이 본인을 집어삼키고 있다는 징조. 회사가 수진(을 포함한 모든 직원들)에게 원하는 변화. 오로지 직업인의 자아만이 남아있는 것. 그때 진아와 수진, 그리고 직원들은 매체와 동일시된다. "저도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여기서 우리는 진아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지를 질문하면 안 된다. 진아는 상담원으로서는 하면 안 되는 행동을 하고 있다. 인간으로서 마주하는 것. 직업인의 자아를 뛰어넘는 것. 이때 진아는 남자와 고객과 상담원이 아닌 인간 대 인간, 주체와 타자로서 마주하게 된다. 여기에 더 이상 기호의 논리, 자본주의의 논리는 작동하지 않는다. 진아는 그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다. 이로써 (회사가 그녀에게 맡긴) 진아의 교육은 실패한다. 이제 진아와 수진의 위치는 뒤바뀌게 된다. 진아가 수진에게 가르침을 받을 차례이다. 이 가르침을 받은 뒤 아파트 복도만을 따라가던 카메라는 처음으로 아파트 외부 전체를 진아의 시점으로 바라본다. 집이 낯설어지는 순간. 내 옆집에 사는 이웃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순간. 그제야 진아는 비로소 이웃들과 함께 살고 있는 자신의 자리를 알게 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상한 쇼트. 진아가 바라보는 cctv 화면이 스크린에 그대로 나타난다. 화면 속에서 진아의 아버지는 자신이 다니는 교회 사람들과 함께 진아의 어머니를 위한 추도 예배를 드리고 있다. 표면적으로 아버지는 분명 자신의 아내를 애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 애도는 뭔가 이상하다. 여기에는 가장 중요한 애도의 대상이 빠져있는 것만 같다. 예배를 드리는 아버지와 교회 사람들은 어머니를 기억하기보다는 자신들끼리 즐거운 시간을 가지기에 바쁘다. 유령이 만들어준 길. 유령이 안내해준 세계. 이제 진아의 직업 자아가 만들어낸 환상의 세계는 무너진다. 진아는 남자의 유령이, 그리고 수진의 가르침에 따라 새로운 세계, 혼자 사는 사람들의 세계를 살아가야 한다. 다만 그녀의 옆에는 수진이 사라진 상황이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적응은 온전히 그녀 홀로 감당해야 하는 몫이다.
5. 회사로 출근했을 때 수진은 더 이상 자리에 있지 않다. 아니, 있을 수 없다. 회사에는 그녀 자신이 아닌 그녀의 직업 자아만이 있을 수 있다. 콜을 받은 후 진아는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목 통증을 느낀 후 수진에게 선물 받은 스프레이를 처음으로 뿌린다. 진아가 상품이 아닌 선물을 쓰는 순간. 그때서야 진아는 수진과 처음으로 가면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관계를 맺게 된다. 더 이상 진아는 자신의 직업 자아, 직업인의 가면만으로는 버틸 수 없다. 가면이 무너진다는 것은 그 가면이 만들어낸 일상의 환상 역시 무너진다는 의미이다. 평소처럼 똑같은 국수를 먹던 진아는 뭔가 이질적인 것을 느낀 것 마냥 먹기를 주저한다. 진아는 그제야 국수의 맛을 본 것이다. 실재의 맛. 스마트폰 화면에서 소비하던 기호의 맛이 아닌 실재의 맛. 그동안 진아에게 국수는 그 자체의 맛을 위해서가 아닌 다른 맛의 기호를 매개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그 기호 뒤에 숨어있던 국수의 맛을 진아는 만나게 된다. 기호의 환상이 무너지는 순간. 일상이 낯설게 바뀌는 순간. 진아는 점차 수진의 가르침을 깨달아 나간다. 다시 일터로 복귀한 진아는 자신의 카드 명세서를 읽어달라는 고객의 콜을 받는다. 화면에는 강조하듯이 "절대로 틀리지 말 것"이라고 적혀있다. 기계가 될 것을 요구하는 회사. 이를 충실하게 지키며 이전과 같이 결재 내역을 읽어나가는 진아. 하지만 지금의 진아는 더 이상 직업인의 자아만이 남은 진아가 아니다. 그녀가 직업인의 가면 뒤로 숨으려고 할 때 그녀의 실존이 그녀를 부를 것이다. 컴퓨터 화면만을 쳐다보며 결재 내역을 읽어나가던 진아는 갑자기 수진이 말했던 연결음을 듣게 된다. 가면 뒤의 실존이 보내는 위험신호. 더 이상 가면에게 잡아먹히지 않겠다는 실존의 저항. 그러자 기계처럼 화면을 읽어나가던 진아는 고장이 난 것처럼 버벅거린다. 고객도 이에 불만을 품고 진아에게 멈추라고 한다. 하지만 진아는 멈추지 않는다. 아니, 멈출 수가 없다. 가면은 실존의 저항을 뿌리치려고 하듯이 더욱 자신을 강하게 표출한다. 진아의 귓가에는 연결음이 계속해서 들려온다. 진아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은 얼굴로 계속 기계처럼 명세서를 읽어간다. 고객은 그런 진아에게 멈추라고 소리친다. 진아가 처음으로 고객에게 항의를 받는 순간. 이 여성 고객은 마치 진아에게 더 이상 기계처럼 말하는 것을 멈추고 인간으로서의 진아로 돌아오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그리고 다음 쇼트. 진아가 전날 보았던 cctv 화면이 갑자기 나타난다. 그 자리에는 원래 컴퓨터 화면이 있어야 한다. 이 쇼트는 마치 cctv 화면이 갑작스럽게 침투해 들어온 것처럼 보인다. 그 화면에는 추도 예배를 드리면서 즐겁게 웃고 떠드는 아버지의 모습이 나타난다. 어머니를 배제하는 아버지. 기호의 세계, 가면의 세계, 가면이 만들어낸 환상의 세계, 한국 사회와 한국 기성세대가 구축한 세계, 그 환상의 이면에 숨어있던 실재, 그 실재에 대한 환유로서의 아버지. 진아는 비로소 자신이 보았던 cctv 화면 속 아버지의 의미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자신이 속한 세계의 실재. 이토록 공허한 실재. 진아는 자신의 일터를 박차고 나간다. 그리고는 곧장 아버지의 집에 찾아가지만 아버지는 집에 없다. 전화를 걸어보니 아버지는 다른 사람들과 시끄럽게 노는데 정신이 팔린 것 같다. 딸은 그런 아버지에게 계속 전화를 걸더니 갑자기 자신과 어머니에게 사과할 것을 울부짖으며 요구한다. 어떤 사과? 어머니의 유령을 집에서 쫓아낸 것, 어머니의 자리를 다른 사람들로 대체한 것, 그리고 자신을 어머니와 떨어뜨리려고 한 것. 아버지의 세계에 속해있는 한 딸은 어머니의 유령을 만날 수 없다. 그렇기에 진아는 어머니를 원래 자리에 되돌려 놓을 것을 아버지에게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에 대한 딸의 애도.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애도에는 진아가 자신을 유령과 동일시한다는 전제가 뒤따른다는 것이다. 한 번 더 상기해보자. 진아가 처음 이웃집 남자의 유령을 만날 수 있었던 이유는 진아 본인이 유령과 같은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웃집 남자의 죽음에서 진아 자신의 죽음과 그 죽음의 의미를 볼 수 있었다는 의미이다. 마찬가지로 진아가 어머니를 애도할 수 있다는 것은 어머니의 죽음을 자신의 죽음과 동일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세계에서 어머니는 죽음과 동시에 추방당한다. 그건 진아 자신도 죽음 이후 아버지로부터 언제든지 버림받을 가능성을 보았다는 뜻이다. 이웃집 남자의 유령에게서 혼자 사는 사람의 고독한 죽음을 보았다면 어머니의 유령에게서는 아버지의 세계로부터의 상징적 추방을 보게 된다. 두 가지 극단 사이에 선 진아.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두 타자를 모두 환대할 수 있는 세계로 들어가야만 한다. 전화를 끊은 진아는 집으로 돌아간다. 영화는 이전과 달리 그녀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차근차근 따라간다. 그래서인지 이 장면은 마치 하나의 여행 혹은 여정을 보는 것만 같다. 집으로 돌아가는 여정. (라캉의 용어를 빌리자면) 환상을 가로지르는듯한 여정. 집에 도착했을 때 옆집에서는 성훈과 아파트 사람들이 이전에 죽은 이웃집 남자를 위한 제사를 지내고 있다. 아버지의 애도와 달리 성훈의 애도는 온전히 타자를 위한 애도이다. 그리고 남자의 유령은 비로소 혼자 사는 사람들의 세계에 환대받는다. 이것이 홍성은이 진아에게 제안하는 기성세대의 세계에 대한 대안이다(홍성은은 이것을 강조하기 위해 기성세대인 아버지는 예배라는 신세대적인 방법을, 신세대인 성훈은 제사라는 기성세대의 방법을 쓰는 역설을 배치했다). 기호가 아닌 실존의 세계. 가면이 아닌 인간의 세계. 제사가 끝난 후 성훈은 유령이 진아에게 알려준 대로 성냥불로 담배에 불을 붙인다. 유령과 동일시되는 성훈. 그 유령과 함께 환대받는 진아. 그리고 진아 역시 자신의 세계에 새로운 타자를 환대한다. 영화에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와도 통화를 하지 않던 진아는 처음으로 수진에게 전화를 건다. 수진은 진아가 자신에게 그동안 쌓인 불만을 토로하기 위해 전화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자 TV 앞에서 전화를 하던 수진은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피해 고백하듯이 말한다. "사실 저는 혼자 아무것도 못하는 것 같아요. 그냥 그런 척하는 것뿐이지". 그리고 이어지는 말. "난 수진 씨한테 제대로 된 작별인사를 하고 싶어요". 이윽고 다음 쇼트에서 수진의 모습이 나온다. 집에서의 수진. 직업인으로서의 수진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수진. 진아는 이 타자를 자신의 세계로 환대한다. 이웃집 남자에게는 미처 하지 못했던 작별인사를 통해서. "수진 씨. 잘 가요. 만나서 반가웠어요. 못 챙겨줘서 미안해요. 내가 잘 못했어요". 이 말을 들은 수화기 너머의 수진은 눈물을 흘린다. 끝내 환대받은 타자의 눈물. 자신의 가르침이 성공한 자의 눈물. 당연히도 이건 기쁨의 눈물이다. 그날 밤 진아는 처음으로 방안의 TV를 끄고 잠에 든다. 다음 날 아침, 진아는 항상 어둡고 음침하던 자신의 방에 커튼을 거두고 아침 햇살을 맞이한다. 그리고 회사를 그만둔다. 이제 직업인으로서 진아는 잠시 멈출 시간이다. 항상 혼자 담배를 피우던 진아는 팀장과 함께 담배를 피운다. 여기서 두 여성은 직업인의 가면을 벗고 잠시나마 인간으로서 대화를 나눈다. 팀장은 한탄하며 말한다. "내가 요즘 들어서 생각한 건데, 우리가 일을 너무 열심히 한 거 아닌가 싶어. 좀 설렁설렁할 걸 그랬나". 그리고 진아가 마지막으로 인사한다. "정리되면 밥이나 같이 먹어요". 아직 팀장은 이 상투적인 인사를 믿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전과 달리 이 상투적인 약속은 곧 실현될 것만 같은 믿음이 간다. 버스를 타고 돌아가는 진아에게 아버지가 전화를 걸어온다. 아버지는 지난 통화에서 딸이 울부짖으며 사과하라고 한 것을 전혀 듣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 아버지에게 딸이 말한다. "아버지 집 거실에 홈 캠이 있어요. 그걸로 아버지 집 거실 볼 수 있어요. 그걸로 자주 아버지 들여다볼게요. 딱 그렇게까지만 지내요 우리". 딸의 선언. 더 이상 딸과 아버지라는 상투적 관계가 아닌 인간으로서 마주하겠다는 선언. 그러니 우리 사이의 물리적 거리가 있어도 계속 지켜볼 수 있으니 걱정 말라고 말하는 딸. 아버지는 아직 이것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진아는 어머니의 연락처 이름을 아버지로 바꾼다. 이제 아버지는 어머니의 자리에서 딸과 만나지 못한다. 딸은 아버지와 그저 아버지로서 만나기를 바란다. 둘 사이의 간극은 딸이 거실에 둔 cctv가 메울 것이다. 아버지에 대한 딸의 환대. 아버지의 세계가 아닌 자신의 세계로의 초대. 기성세대에 대한 청년 세대의 제안. 관객에 대한 홍성은의 제안. 카메라는 마지막으로 버스를 타고 가는 진아의 모습을 처음으로 창문 밖에서 바라본다. 창문에는 지나가는 거리의 풍경이 비친다. 버스 안의 진아는 이 풍경을 담담하게 지켜본다. 고립되었던 진아의 일상은 이웃집을, 그리고 함께 사는 사람들의 세계를 바라보며 한 층 더 넓어진다. 혼자 사는 사람들의 세계 역시 그렇게 구축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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