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1년 9월 11일 미국 대폭발 테러 사건
2002년 1월 미국은 북한•이라크•이란을 '악의 축'으로 규정
2003년 3월 17일 미국•영국•오스트레일리아 동맹국은 대량살상무기 제거와 자국민 보호, 세계평화 유지를 명목으로 이라크에 48시간의 최후 통첩
2003년 3월 20일 오전 5시 30분 바그다드 남동부에 미사일 폭격으로 전쟁 개시
작전명: 이라크의 자유(Freedom of Iraq)
이라크 8만 7천여명 사망(정확한 수치 밝혀지지 않음), 난민 450만명
미군 4천여명 사망, 2만 9천여명 부상
‘그린존’이란?
2003년 사담 후세인 정권 붕괴 뒤 후세인이 사용하던 바그다드 궁을 개조한 미군의 특별 경계구역으로
미군 사령부 및 이라크 정부청사가 자리한 전쟁터 속 안전지대.
고급 수영장과 호화 식당, 마사지 시설, 나이트 클럽뿐 아니라 대형 헬스 클럽과 댄스 교습소가 존재 했으며
이슬람 국가에서 금지되었던 술이 허용되었다.
이 곳의 미군 장교들은 ‘그린존’ 담 너머의 유혈 사태에는 관심이 없었다.
2003년,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가 제조되고 있다는 명분하에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은 전쟁이 끝나고도 대량살상무기의 존재를 발견해내지 못하자, 이라크에 자유민주주의를 뿌리내려 이라크를 민주주의 국가로 만들겠다는 또 다른 명분을 내세운다. 급기야 미국은 연합군임시행정처(CPA)라는 기관을 만들어 2003년 4월부터 2004년 6월까지 약 1년 동안 전쟁 후의 이라크를 관리하게 된다.
이라크에 파견된 CPA 직원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나? 그들은 낙태나 사형제도 같은 문제들에 대해 어떠한 관점을 가지고 있는지, 대통령 선거 당시 조지 부시 대통령을 찍었는지 등과 같은 질문으로 면접을 보고 부시 행정부에 대한 충성도를 검증받은 사람들이었다. 이라크를 돕기 위해 CPA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매우 뛰어난 인재들의 이력서가 충성도가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수없이 쓰레기통에 버려지고, 그들 대신 공화당전국위원회에 크게 기여한 이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CPA 관료들은 이라크를 자본주의 유토피아로 만들겠다는 미명 아래 여러 가지 계획과 프로젝트를 시행한다. 하지만 민주주의 확립이라는 명분하에 미국인들은 오만과 미숙함, 우물 안 개구리식의 편협함과 같은 부조리를 행하고, 부시 행정부에 대한 어떤 부정적 발언도 해서는 안 된다는 암묵적 약속은 도시의 빗장을 더욱 견고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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