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ible

History

by 헣푸로 2022. 11. 15.

느부갓네살 [ Nebuchadnezzar ]

 

‘느보(Nebo) 신()이 국경을 지켜주셨다’는 뜻. 신 바벨론 제국 2대 왕인 느부갓네살 2세(B.C. 605-562년경). 그는 바벨론의 창설자이며 부왕()인 나보폴라살이 당대 최강대국인 앗수르를 공격할 때 왕자로서 니느웨를 함락시키고 앗수르 제국을 멸망시켰다. 3년 뒤 앗수르의 세력이 약화된 틈을 노려 중근동의 패권을 차지하려던 애굽 바로 느고(Pharaoh-Neco)가 앗수르 지역까지 진출했을 때 갈그미스(Carchemish)에서 애굽을 맞아 격퇴시킴으로써(B.C. 605년) 바벨론을 명실상부한 중근동 최고의 강대국 자리에 올려놓은 인물이다.

B.C. 605년 왕위에 오른 느부갓네살은 남진 정책을 추진하여 남유다의 여호야김, 여호야긴을 차례로 바벨론에 포로로 잡아갔으며, 끝까지 항전하던 남유다의 수도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시드기야 왕과 많은 유다 백성을 바벨론에 포로로 끌고가기도 하였다(B.C. 586년, 왕하 24-25장; 렘 36장). 그뒤 13년째 저항하던 두로(겔 29:19), 수리아, 모압, 암몬을 차례로 함락시킨 뒤(B.C. 582년) 그 여세를 몰아 2차례에 걸친 애굽 원정을 단행하였다(B.C. 572년, 569년).

이렇듯 느부갓네살은 군사적으로 중근동을 완전히 제패했지만 그의 업적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포로로 잡아간 많은 이민족을 노예로 동원하여 바벨론 각처에서 성벽 왕궁, 므로닥 신전 수축하고, 여러 개의 대운하를 건설하였다. 특히 그의 부인 아미티스(Amytis)를 위해 고향 메대에 지은 ‘공중정원’(Hanging Garden)은 오늘날까지 세계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그래서 느부갓네살은 함무라비 이후 바벨론 최고의 위대한 군주로 꼽힌다. 그러나 그는 정신질환을 앓아 7년 동안 소처럼 들에서 풀을 뜯어 먹고 살기도 했다(단 4장). 그의 사후 왕위는 아들 에윌므로닥에 의해 계승되었다.

바벨론

‘신(神)의 문’이란 뜻의 아카드어 ‘바빌루’의 음사(). ‘혼란’이란 뜻. 갈대아의 수도로(마 1:11; 계 14:18), 바그다드 남쪽 50㎞ 지점 유브라데 강변에 위치한 성읍. 훗날에는 이 성읍을 중심으로 건설된 바벨론 제국을 가리킨다. 한편, 성경에서 바벨론은 ‘강 저쪽’(수 24:2-3), ‘해변 광야’(사 21:1, 9), ‘딸 갈대아, 여러 왕국의 여주인’(사 47:5), ‘세삭’(렘 25:12, 26), ‘므라다임의 땅’(렘 50:21), ‘온 세계의 망치’(렘 50:23), ‘온 세계를 멸하는 멸망의 산’(렘 51:25), ‘갈대아 땅’(겔 12:13), ‘시날 땅’(단 1:2; 슥 5:11) 등으로 묘사되고 있다.

인류 최초의 영웅 니므롯에 의해 세워진 여러 도시들 중에 한 곳이었다(창 10:10; 11:1-9). 이때는 대략 B.C. 4000년(혹은 3000년)경으로 본다. 그렇다면 이 도시는 인류가 거주했던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수메르인의 문서에 따르면, 바벨론은 아카드의 사르곤 왕에 의해 B.C. 2400년경 파괴되었다. 그리고 B.C. 2000년대 후반기에 우르(Ur)의 제3왕조(B.C. 2150-2000년경)의 술기 왕이 바벨론을 점령한 뒤 그 후계자들이 계속 지배해 오다가 그후 셈족 계열의 아모리 왕조(Amorite)가 침입해 도시를 전복시키고 바벨론 제1왕조(고대 바벨론)를 열었다. 그 왕조의 첫 왕 수무아붐(Sumu-abum)은 이 도시의 성벽을 복원했고, 삼수일루나(Samsu-iluna) 왕은 도시를 확장하는 등 당대 패권 세력으로서의 영화를 구현하였다(이 시대의 유물은 유브라데 강의 범람으로 거의 유실됨). 제1왕조는 B.C. 1595년 무르실리스 1세(Mursilis Ⅰ)가 이끄는 헷 족속(Hittites)에 의해 도시가 함락될 때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였다.

남유다 왕국 멸망시킨 바벨론은 묵시문학에서 하나님의 나라 백성 대적하는 로마 제국, 세상 나라, 멸망당할 사탄 및 사탄의 왕국, 우상 숭배 배교() 등으로 상징된다(벧전 5:13; 계 14:8; 17:5; 18:2, 10).

역사

① 바벨론 제1왕조에서 가장 유명한 왕은 제6대 함무라비(Hammurabi, B.C. 1792-1750년) 왕이다. 그는 중앙 집권 국가 건설, 행정 조직 정비, 종교적 봉건제 실시, 운하의 개통 등 고대 바벨론 문화의 황금 시대를 이루었다. 특히 사회 질서 유지와 경제적 정의 실현을 위해 ‘함무라비 법전’을 제정하였다.

② 그후 헷 족속에 의해 도시가 함락되었고 주신() 마르둑과 그 배우자 신 차르파니툼 신상이 헷 족속의 성읍으로 옮겨졌다. 그 이후 카시트(Cassit) 족속, 앗수르, 엘람에 의해 차례로 지배당했다.

 느부갓네살 1세(Nebuchadnezzar, B.C. 1124-1103년경)가 빼앗겼던 마르둑 신상을 되찾아옴으로써 중기 바벨론 시대를 열었다. 중기 바벨론은 독립 국가 형태를 유지하기는 했지만 주변국 앗수르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④ 신앗수르 제국의 디글랏 빌레셀, 사르곤 2세에게 저항하다 그 뒤를 이은 산헤립(Sennacherib, B.C. 704-681년)에 의해 전멸되고 도시는 약탈당했다(B.C. 689년경).

⑤ 앗수르의 에살핫돈이 노쇠한 이 도시를 재건하는 등 바벨론에 대한 유화 정책을 시도했으나 바벨론 시민들의 독립 의지는 꺾지 못했고 마침내 나보폴라살(Nabopolassar, B.C. 625-605년)을 중심으로 하는 민중 봉기를 통해 앗수르 군대 멸절시키고 바벨론은 다시 제국의 중심 도시가 되었다.

⑥ 바벨론의 나보폴라살과 그의 정력적인 아들 느부갓네살 2세(Nebuchadnezzar Ⅱ, B.C. 605-562년경) 때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이때 유다 백성 나라를 잃고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다(왕하 24-25장). 바로 이때가 고대 세계에서 바벨론이 그 영화를 자랑하던 시기였다.

 벨사살(Belshazzar, B.C. ?- 539년) 왕 때, 바사 고레스(Cyrus Ⅱ, B.C. 539-530년)에 의해 바벨론이 멸망당했다(B.C. 539년경, 단 5:30).

⑧ 헬라의 알렉산더 대왕 시대를 거치면서 수리아의 셀류쿠스 1세(니카토르)가 티그리스 강변에 셀류키아(Seleucia) 시()를 세우면서 바벨론은 결국 역사에서 사라지게 된다.

바벨론의 공중정원 (The Hanging Gardens of Babylon)

공중정원의 상상도
공중정원으로 추정되는 유적지
1세기 히브리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사랑하는 아내 아미티스를 위해 정원을 건설했다고 기록했다. 고대 신바빌로니아 제국(바빌론 제10왕조)의 수도 바빌론에 존재했던 거대한 옥상 정원 단지로 그리스의 시인 안티파트로스가 꼽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이다. '공중정원'이라는 이름만 들으면 불가사의한 기술로 《걸리버 여행기》의 라퓨타처럼 공중에 떠 있는 정원(부유도)이 아닐까 오해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높은 위치에 조성된 정원'이라는 의미이다. 한국어의 불가사의와 7대 불가사의 명칭은 모두 일본의 서적을 수입하면서 번역명을 그대로 중역한 것으로, 오역한 내용까지 답습하게 된 것. 그런데 이를 가리키는 영어 어휘 'hanging garden(매달린 정원)' 역시 정확한 번역은 아닌데, 실제로는 어딘가에 매달린 구조의 건축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스어로는 공중정원을 'Κρεμαστοί κήποι(Kremastí kípi)'라고 적는데 'kremastos'라는 단어에 '공중'이라는 의미 외에도, '테라스 형식으로 지었다'는 뜻 또한 있다. 당대의 건축 기술로 고층 건물에 물을 지속적으로 끌어올려 수목이 가득한 정원을 조성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높은 곳에 조성된 정원은 여러 신화에서 신이 다스리는 낙원의 이미지와도 닿아 있었으며, 고대인들은 당시로서는 상상의 산물에 불과했던 것이 지상에 구현되었다는 점에서 그 경이로움에 감탄했다. 아미티스는 메디아 출신의 공주로, 국가의 이익을 위해 정략결혼을 하긴 했지만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아내를 굉장히 아끼고 사랑했었다고 전해진다. 아미티스는 산으로 둘러싸인 자신의 고향과는 다른 평야 한가운데 위치한 바빌론의 삶에 지쳐 향수병을 앓았는데,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아내를 위해 아내의 고향을 닮은 정원을 건설한 것

애굽왕 바로

 "바로"라는 표현은 왕 대신에 지도자를 사용하여 "애굽 국가의 지도자 파라오"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온당하다. "애굽왕 바로"라는 표현에서의 "왕"은 지도자에 외연되는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합3:7 내가 본즉 구산의 장막이 환난을 당하고 미디안 땅의 휘장이 흔들리도다

구산은 메소포타미아의 통치자를 부르는 통칭입니다.
 
우리나라 통치자는 대통령이라고 부르고, 영국의 통치자는 수상이라고 부르며, 북한의 통치자는 국방위원장이라고 부릅니다.

애굽의 통치자는 바로라고 부르고, 블레셋의 통치자는 아히멜렉이라고 부르며, 하솔의 통치자는 야빈이라고 부르고, 아람의 통치자는 벤하닷이라고 부릅니다.

 
리사다임이라는 메소보다미아 왕은 구산이라는 명칭의 메소보다미아 통치자였습니다. 
삿 3:8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팔 년을 섬겼더니
 
메소보다미아는 바벨론 지역이니 (=메소포타미아 =Mesopotamia) 합3:7 구산의 장막이 흔들린다는 것은 바벨론 왕조가 두려워서 떨고 있다는 뜻입니다. 바벨론이 무너지는 것은 요한계시록 17장,18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