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간 것들은 무거웠다
두고두고 무거웠다
그러나 그러지 마라
그래도 그러지 마라
그러니 그러지 마라
신은 한번도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
일곱 살 때 아버지를 빼앗아 갈 때도
노동자로 천대받고 억울하게 짓밟혀도
참혹한 지하 밀실 고문장의 절규에도
사형을 받고 무기징역을 살 때에도
30년을 음해와 비난에 상처 깊을 때도
...
이제 와 문득문득 생각하느니
인생 내내 고생 참 달다
빌어먹을 신의 선물
이유 없는 고통이 아주 많다
'어찌할 수 없음'에 순명할 것
'어찌해야만 함'에 분투할 것
기억하라
한 시절 잘못된 자들이 설친다 하여
함부로 좌지우지되는 역사인 줄 아느냐
고통의 날에도 다시 해는 뜨고 꽃은 피고
경계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말 것
오늘이 미래를 잡아먹지 말 것
미래를 위해 오늘을 유보하지 말 것
우는 건 속일 수 없다
그 진실한 기분
비가 내린 대지는 얼마나 시원한가
오늘은 수선화가 처음 핀 날
햇살은 맑아도 공기는 시린데
아침부터 수선화 앞에서 어쩔 줄 모른다
경작할 땅은 어디에도 없어서
허공에 씨를 뿌린다
내 발자국이 나의 영토이다
마르지 않는 눈물과 핏방울이 나의 씨앗이다
나무랑 씨앗들은 지들 알아서 하라고 내비두고
맛있는 아욱 된장국 드시러 그냥 한번 오셔유
나무 한 번 씨앗 한 번
하늘 한 번 바라보다
허허허 웃고 일어선다
조급함과 태만함은
모든 악이 파생되어 나오는 근본적인 죄이니
조급한 자가 실은 태만한 자이고
태만한 자가 실은 조급한 자이니
그래, 니가 알아서 해부러라
살아나든지 마시든지
씨앗도 나무도 시도 일도 인연도
다 공짜다
아침 햇살도 푸른 하늘도
맑은 공기도 숲길을 걷는 것도
아장아장 아이들 뛰노는 소리도
책방에서 뒤적이는 지혜와 시들도
거리를 걷는 청춘들의 시원한 자태도
아무 바람 없는 친절과 미소도
푸른 나무 그늘도 밤하늘 별빛도
계절 따라 흐르는 꽃향기도
마음의 기척
흙마당 잡초를 뽑듯 말을 솎는다
가을 길 낙엽을 쓸듯 상념을 쓴다
정원에 꽃을 가꾸듯 고독을 가꾼다
흰 서리 아침 마당에 시린 국화 향기
첫눈이 오려나 그대가 오려나 마음의 기척
가을 나그네
지금쯤 물든 감 잎사귀 하나 둘 떨어지고
발간 등불 같은 감들이 허공에 환하겠다
지금쯤 햇살 좋은 창가에 빈 의자 하나
먼 길 떠난 나를 그리며 기다리겠다
그대 맑은 눈물에 별이 빛나기를
꽃이 진다
꽃이 간다
지는 꽃잎이 바람에 향기를 전한다
향사전언
그대가 떠났구나
가슴 시린 향기여
향기에 쓴 유언이여
바람의 전언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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