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은 대부분 실재론자로 태어나서 아무 문제 없이 살아가다가 실재론자로 죽는다.
다만 삶을 실용과 안락의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진실과 깊은 이해의 측면에서 접근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결국 관념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관념론이 실제 세계의 모습을 더 정확하게 반영하기 때문이다.
눈앞에 빨갛게 잘 익은 사과가 있다.
나는 이 사과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본다는 과정은 생각보다 복잡한 단계를 거친다.
우선 광원이 있어야 한다.
태양이나 형광등이나 촛불이나 빛이 나오는 근원이 있어야 한다.
다음으로 이 광원에서 입자이자 파동인 광자가 쏟아져 나온다.
그리고 광자가 사과의 표면과 만나서 일부는 흡수되고 일부는 튕겨 나간다.
튕겨 나온 광자의 일부가 눈으로 들어오고 망막의 시각 세포를 자극한다.
시각 세포는 빛 에너지를 흡수한 뒤에 이를 전기적 신호로 바꾼다.
이 전기적 신호가 시신경을 따라 뇌까지 전달된다.
뇌는 눈도 없고 코도 없고 어떠한 감각기관도 없지만 신체의 각 부분에 연결된 시신경을 통해 전기적 신호를 받아 들인다.
이 신호들은 종합과 해석의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뇌가 해석한 이미지가 나의 내면에 드러난다.
우리는 이제 이렇게 느낀다.
눈앞에 잘 익은 빨간 사과가 있다.
흥미로운 것은 눈에서 시작되어 시신경을 따라 뇌까지 이어지는 과정에서 '빨간색'과 관련된 것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 사이에는 그저 전기적 신호만이 있다.
빨간색이라는 것은 뇌가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물어야 한다.
빨간색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내 신체 밖에 있는가, 아니면 내 안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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