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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팩트풀니스 FACTFULNESS] 한스 로슬링

by 헣푸로 2022. 8. 10.

사실충실성 factfulness

 

세계 건강 도표(www.gapminder.org/whc)

달러스트리트(www.dollarstreet.org) 

13개의 사실 문제(www.gapminder.org/test/2017)

 

이 문제는 단지 사람들의 지식 부족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랬다면 침팬지처럼 오답이 무작위로 나왔어야 한다.

오답은 체계적이었다. '지식'이 '적극적'으로 잘못되었을 때만 가능한 일이다. 업그레이드의 문제였다.

무지를 뿌리 뽑으려면 사람들의 지식을 업그레이드해야 했다.

 

물가 차이를 반영한 1인당 1일 소득

 

세로축 눈금을 바꿔보자. 숫자는 같은데, 도표에서 받는 느낌이 확 달라진다. 이제 간극이 거의 없어 보인다.

 

평균뿐 아니라 분산도 같이 본다면,

언뜻 별개로 보이는 집단도 사실은 겹치는 부분이 많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4단계 사람에게는 1, 2, 3단계 사람이 모두 똑같이 가난해 보일 수 있고, '가난하다'는 말이 특별한 의미를 갖지 못할 수도 있다. 1, 2, 3단계 사람에게는 각 단계의 차이가 매우 중요하다. 극도로 빈곤한 1단계 사람은 하루에 1달러를 벌다가 4달러를 번다면 삶이 얼마나 달라질지 잘 안다.

 

간극 본능을 억제하려면 다수를 보라.

- 평균 비교를 조심하라. 분산을 살펴본다면 겹치는 부분을 발견할 것이다. 그러면 둘 사이의 간극 따위는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 극단 비교를 조심하라. 국가로 보나, 사람으로 보나 어느 집단이든 상위 계층과 하위 계층이 어느 정도는 있게 마련이다. 아울러 그 차이가 심각하게 불공평할 때도 더러 있다. 그러나 그런 경우라도 사람들이 흔히 간극이 존재하려니 생각하는 중간층에 사실은 다수의 사람이 존재한다.

- 위에서 내려다 보는 시각. 위에서 내려다보면 시야가 왜곡된다는 점을 명심하라. 모든 게 다 똑같이 작게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사실충실성은 지금 저 뉴스는 부정적 면을 보도한다는 걸 알아보는 것이고, 나쁜 소식은 좋은 소식보다 우리에게 전달될 확률이 훨씬 높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다. 어떤 상황이 점점 좋아져도 그것은 뉴스가 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주변 세계에 대해 항상 지나치게 부정적 인상을 받기 쉽고, 이것이 대단한 스트레스가 된다. 

 

부정본능을 억제하려면 나쁜 소식을 예상하라.

- 나아지지만 나쁘다. 현 수준(나쁘다)과 변화의 방향(좋아진다)을 구별하는 연습을 하라. 상황은 나아지는 동시에 나쁠 수도 있다는 확신을 가져라.

- 좋은 소식은 뉴스가 안 된다. 좋은 소식은 거의 보도하지 않는다. 그래서 뉴스는 거의 항상 나쁜 소식이다. 나쁜 소식을 볼 때면, 같은 정도의 긍정적 소식이었다면 뉴스에 나왔을지 생각해보라.

- 점진적 개선은 뉴스가 안 된다.

- 뉴스에 많이 나온다고 해서 고통이 더 큰 것은 아니다. 나쁜 뉴스가 많이 나오는 이유는 세상이 나빠서가 아니라, 고통을 감시하는 능력이 좋아졌기 때문일 수 있다.

- 장밋빛 과거를 조심하라.

 

유엔 전문가들은 '앞으로' 아동인구의 증가세가 멈출 것이라고 '예측'하지 않는다. 이미 멈추었다고 '보고'한다.

 

1800년까지 여성은 아이를 평균 6명 낳았다. 따라서 인구는 세대마나 늘었어야 한다. 그런데 큰 변화가 없었다. 아이 6명 중 평균 4명이 부모가 되기 전 죽는 바람에 2명만 다음 세대에 부모가 되었다. 균형을 이루긴 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이 '살아서'가 아니라 '죽어서' 이룬 균형이다. 몹시 잔혹하고 비극적 일이다.

오늘날 인류는 다시 한번 균형을 이루고 있다. 부모 수는 더 이상 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균형은 과거의 균형과 완전히 딴판인 훌륭한 균형이다. 보통의 부모는 자녀 둘을 두고, 둘 다 죽지 않는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살아서' 균형을 이루고 있다. 20세기는 인류 역사에서 부모가 낳은 자식 중에 평균 2명 이상이 살아서 다음 세대에 부모가 된 유일한 시기다.

 

"가난한 아이를 구하면 인구는 '단지' 늘어난다"는 말은 옳은 것 같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극빈층 탈출이 늦어질 때 인구는 '단지' 늘어난다. 극빈층에 갇힌 세대가 오히려 다음 세대 인구를 더 증가시킬 것이다. 인구 성장을 멈출 수 있는 유일하게 증명된 방법은 극빈층을 없애고, 교육과 피임을 비롯해 더 나은 삶을 제공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소득은 대개 세균보다 훨씬 천천히 증가한다. 하지만 소득이 연간 고작 2% 늘어난다 해도 35년 되면 2배가 된다. 그리고 꾸준히 2%씩 증가하면 35년 뒤엔 또다시 2배가 된다.

 

하루에 1달러로 사는 1단계에서는 1달러가 더 생기면 양동이를 하나 더 살 수 있다. 삶이 달라지는 변화다. 하루에 64달러로 사는 4단계에서는 1달러가 더 생긴다고 달라질 게 없다. 하지만 하루에 64달러가 더 생긴다면 집에 수영장을 만들거나 여름 별장을 살 수 있다. 이 때 비로소 삶이 달라진다. 세상은 지독히 불공평하다. 그러나 어느 지점에서 시작하든 소득이 2배 증가하면 여지없이 삶이 달라진다.

 

하나의 곡선에서 어느 부분을 보는가?

 

2015년 세계는 9,000명이 사망한 네팔의 상황을 열흘가량 지켜보았다. 그런데 같은 기간 전 세계에서 오염된 물을 마시고 설사를 하다가 죽은 아이 역시 9,000명에 이른다. 아이들이 이웃의 뜨뜻한 대변이 섞인 물을 여전히 실수로 마시는 일이 없도록 하려면 플라스틱 관 몇 개와 펌프, 비누, 기본적인 하수처리 장치만 있으면 그만이다. 헬리콥터보다 비용이 훨씬 적게 든다. 

 

4단계 나라에서 극적인 테러 사건은 언론의 대대적인 관심을 받는 반면, 음주 피해자는 대부분은 외면당한다.

 

크기 본능을 어떻게 억제할까?

수를 비교하라.

수를 하나만 갖고 따지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절대로 숫자 하나만 달랑 남겨두지 마라. 절대로! 수가 하나라면 항상 적어도 하나는 더 요구해야 한다. 그 수와 비교할 다른 수가 필요하다. 큰 수는 특히 조심해야 한다. 이상한 일이지만, 일정한 크기를 넘어선 수는 다른 수와 비교하지 않으면 항상 커 보인다. 

2016년에 420만 명의 아기가 죽었다. 과연 누가 420만 명이 거대한 수가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420만 명은 2016년 수치다. 그 전해에는 440만 명이었고, 또 그 전해에는 450만 명이었으며, 1950년에는 1,440만 명이었다. 오늘날에 비해 해마다 1,000만 명이 더 죽었다. 이렇게 비교하면 그 끔찍한 수가 갑자기 적어 보인다. 사실 관련 데이터를 측정한 이래 가장 적은 수치다.

베트남이 중국과의 전쟁은 싸움과 휴전을 반복하며 2,000년 동안 지속되었다. 프랑스가 점령한 기간은 200년이었다. 대미항전은 고작 20년 지속되었다. 비의 크기는 그런 기간을 완벽하게 반영했다. 나는 여러 개의 비를 비교한 뒤에야 비로소 지금 베트남 사람들에게 베트남전쟁은 상대적으로 의미가 작다는 걸 이해할 수 있었다.

 

1918년 스페인 독감이 발생해 전 세계 인구의 2.7%가 목숨을 잃었다. 2009년에는 처음 몇 달 동안 신종플루로 수천 명이 사망했다. 그러나 2014년의 에볼라와 달리 신종플루 사망자는 2배로 증가하지 않았다. 심지어 직선으로 진행되지도 않았다.

 

"중국, 인도, 그 밖의 신흥 경제국이 위험한 기후변화를 초래할 정도의 속도로 점점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실제로 중국은 이미 이산화탄소를 미국보다 많이 배출하고, 인도는 독일보다 많이 배출하고 있습니다." 이 거침없는 발언은 2007년 1월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 때 기후변화 토론자로 참석한 유럽연합 소속 국가의 환경부장관에게서 나온 것이다. 반면에 인도 전문가는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았다. "우리 모두를 이런 힘든 상황으로 내몬 건 제일 잘사는 당신네 나라들입니다. 당신들은 한 세기가 넘도록 갈수록 많은 석타과 석유를 사용해왔습니다. 우리를 기후변화의 벼랑까지 몰고 간 건 당신들, 바로 당신들입니다." "하지만 용서하겠습니다. 당신들은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 모르니까요. 누군가에게 해를 끼쳤어도 모르고 그랬다면 그 사람을 절대 비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이산화탄소를 '1인당' 배출량으로 계산합시다."

HIV, 국내총생산(GDP), 휴대전화 판매량, 인터넷 사용자 수, 이산화탄소 배출량 등을 측정할 때는 항상 1인당 수치를 계산해야 더 의미 있는 값을 얻을 수 있다.

 

사람은 끊임없이 범주화하고 일반화하는 성향이 있다. 무의식중에 나오는 성향이지, 편견이 있다거나 깨우치지 못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 사고가 제 기능을 하려면 범주화는 필수다. 범주화는 생각의 틀을 잡는 작업이다. 일반화 본능은 우리에게 필요하고 유용하지만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왜곡할 수 있다.

 

인도 케랄라주 티루바난타푸람이나 우간다 캄팔라에 가면, 도착 첫날 학생들은 대개 매우 잘 정돈된 도시를 보고 깜짝 놀란다. 신호등도 있고, 하수처리 시설도 있다. 그 뿐 아니라 거리에서 죽어가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도착 둘째 날에는 대개 공공 병원을 둘러본다. 벽에 페인트칠도 안 되어 있고, 에어컨도 없고, 병실 하나에 환자 60명을 수용하는 모습을 보면 학생들은 서로 귓속말로 여기는 극도로 가난한 곳이 틀림없다고 말한다.

벽에 페인트칠을 하지 않는 것은 2, 3단계 나라의 전략적 결정이지, 페이트칠할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는 얘기였다. 페인트칠이 떨어져 나간 벽을 그대로 두면 상대적으로 잘사는 환자들을 오지 못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이런 환자는 시간이 많이 드는 값비싼 치료를 요구하는 탓에, 이들을 받지 않아야 병원의 한정된 자원을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사용하고 비용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서 학생들은 환자 중에 당뇨병 진단을 받아도 인슐린이 비싸서 치료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학생들은 이해하기 어렵다. 당뇨병을 진단할 수 있는 병원이면 그래도 괜찮은 곳 아닌가.

2단계의 공중 보건 체계는 일부 질병 진단이나 응급처치, 값싼 약 공급이 가능해 생존율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한다. 하지만 당뇨처럼 평생지속되는 질병을 치료하는 비용은 충당할 여유가 없다.

 

어느 집단의 '다수'가 어떤 특징을 갖고 있다는 말은 마치 그 집단 대부분이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는 말처럼 들릴 수 있다. 다수는 단지 절반이 넘는다는 뜻이다. 51%일 수도 있고, 99%일 수도 있다. 이럴 때 가능하다면 몇 퍼센트인지 물어보라.

 

어떤 대상을 불변의 것으로 보는 이런 본능, 지식을 업데이트하지 않는 이런 본능이 오늘날에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회의 모든 혁신적 변화를 보지 못하게 만든다.

아프리카는 항상 무기력하고 절대 유럽을 따라잡지 못한다는 생각이다. 또하나는 이슬람 사회는 기독교 사회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생각이다.

 

더딘 변화는 불변이 아니다.

사소하고 더뎌 보이는 변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축적된다. 연간 1% 성장은 더뎌 보이지만 70년간 축적되면 2배 성장이 되고, 연간 2% 성장은 35년 뒤 2배 성장이 되며, 연간 3% 성장은 24년 뒤 2배의 성장이 된다.

 

단일 관점 본능

우리는 단순한 생각에 크게 끌리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그 통찰력의 순간을 즐기고, 무언가를 이해한다거나 안다는 느낌을 즐긴다. 모든 문제는 단 하나의 원인이 있어 항상 그것만 반대하면 그만이다. 또 모든 문제는 하나의 해결책이 있어 항상 그것만 지지하면 그만이다.

자유시장이라는 단순하고 멋진 개념은 모든 문제가 정부 개입이라는 단 하나의 원인에서 비롯하니 언제나 정부개입에 반대해야 하며,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세금을 줄이고 규제를 폐지해 시장의 힘을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이니 언제나 그와 같은 해결책을 지지해야 한다는 지극히 단순한 생각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런가 하면 평등이라는 단순하고 멋진 개념은 모든 문제가 불평등에서 초래되니 불평등에 늘 반대해야 하고,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자원 재분배에 있으나 항상 자원 재분배를 지지해야 한다는 지극히 단순한 생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생각에 허점은 없는지 꾸준히 점검해 보라. 내 전문성의 한계를 늘 의식하라. 내 생각과 맞지 않는 새로운 정보, 다른 분야의 새로운 정보에 호기심을 가져라. 그리고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하고만 이야기하거나, 내 생각과 일치하는 사례만 수집하기 보다 내게 반박하는 사람이나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을 만나고, 나와 다른 그들의 생각을 오히려 세상을 이해하는 훌륭한 자원으로 생각하라.

 

전문직: 전문가와 활동가

수치에 밝다든가, 교육 수준이 높다든가, 심지어 노벨상을 받았다든가 해서 똑똑한 것과 세계적 사실에 관한 지식수준이 높은 것과는 무관하다. 전문가는 자기 분야에서만 전문가일 뿐이다.

"아이한테 망치를 주면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인다."는 말이 있다. 가치 있는 전문성을 지닌 사람은 그 전문성을 활용할 곳을 찾고 싶어 한다. 수학을 잘하는 사람은 수에 집착하고, 기후활동가는 틈만 나면 태양에너지를 강조한다. 의사는 예방이 더 나을 법한 경우에도 치료를 장려한다. 훌륭한 지식은 해결책을 찾는 전문가의 능력을 방해할 수 있다.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해법은 없다. 따라서 세계를 다양한 시각으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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